SPRING OUT

Woo Byoungyun  /  우병윤


Words by Seo Jaewoo / 서재우

Photo by  YB Kim


   우병윤의 세계는 온전히 우병윤의 것이다. 그의 사고를 시각화한 그림은 타인에겐 맞춰지지 않은 퍼즐 조각처럼 보인다. 애써 노력해 퍼즐 조각을 맞춰도 그건 그림을 본 이가 상상해 만든 이미지에 가깝다. 산 정상에 운해가 꼈을 때, 운해를 보며 자기만의 완벽한 절경을 떠올리는 것처럼 우리는 그의 이미지를 통해서 자신이 본 풍경을 떠올리는 셈이다. “제가 그리는 건 풍경과 나라는 존재 사이에 있는 무엇입니다.” 우병윤의 말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그가 그려낸 무엇은 아름다움을 목격했을 때 발생하는 파동에 가깝다. 


   대구 자본의 중심지였던 수성구에서 성장한 그가 경험한 건 물질적 풍요가 아닌 돈에 의해 결정되는 삶의 격차였다. “돈에 의해 여러 갈등을 경험했어요. 소비를 통해서 행복을 찾는 사람들 틈에 끼어서 시련과 분노를 경험하며 우울감에 빠져있었죠.” 그를 ‘우울의 샘’에서 건져 낸 건 그림이었다. “저는 직선과 곡선, 채움과 비움, 양각과 음각 같은 대조적 요소가 강조되는 그림을 통해서 어둠의 저편에는 빛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단순한 논리를 깨우쳤습니다.” 어둠의 저편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은 열망이 기저에 있었기 때문에 스타일리스트를 꿈꾸던 대구 청년이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해 어엿한 작가가 될 수 있던 것이다. 


   우병윤은 <중첩> 작업으로 세간에 이름을 알렸다. 그는 캔버스에 석고를 평평하게 바르고, 석고 표면 위에 물이 많이 섞인 과슈 물감을 바른다. 캔버스와 물감 사이에 석고라는 층이 생긴 셈이다. 흥미로운 건 그가 의도적으로 완성된 그림을 얇게 긁어낸다는 점이다. 우병윤의 <중첩>은 물감을 긁어냈을 때 비로소 발현되는 색이야말로 그가 바라본 진정한 풍경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각기 고유한 특성을 지닌 석고와 물감이 관계함에 따라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그가 작업을 통해서 진정으로 내보이는 가치이다. “음악에 의해 우리나라가 창조됐다는 신화를 접했어요. 음악은 물질이 아니잖아요. 정서적 교류를 통해서 전달되는 파동에 가깝죠. 저는 줄곧 물질적 소유를 원하기보다 정서적 안정을 원했어요.” <중첩>은 육중한 잿빛 콘크리트 외벽을 자랑하는 브루탈리즘 건축물처럼 보인다. 거대한 콘크리트 감옥을 상상하지만, 건물 내부로 진입하는 순간 콘크리트를 비집고 들어온 빛줄기에 감복하는 것처럼 관계하지 않으면 결코 그려낼 수 없고, 감응할 수 없는 작품이다. 


   “이제 산에서 내려올 때가 된 것 같아요.” 우병윤의 말은 그의 작품처럼 추상적 의미가 담겨 있다. 그는 줄곧 자신의 빛을 쫓았다. 사람이 아닌 자연과 관계했고, 자신이 발견한 무엇을 표현하기 위해 캔버스와 물감 사이에 석고라는 물질을 숨겨 두었다. 단색화 위주의 작업을 한 것도 그가 바라본 풍경은 온전히 한 개인의 풍경이기 때문이다. “아내는 아무리 소소한 일이라도 꼼꼼하게 기록하는 사람이에요. 아내의 기록 노트에는 개인적인 이야기뿐만 아니라 저와 제 작업, 저희가 함께 마주한 사람들, 함께 본 풍경들, 함께 여행한 도시들이 전부 담겨 있죠. 저는 날마다 기록하고 가까운 지인과 소소한 행복을 나누는 아내를 통해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용기를 얻었어요. 그런 제 마음이 담긴 작업이 바로 <율려>예요.” 


   <중첩>은 자신을 위해서 찾아낸 아름다움을 표현한 작품이라면, <율려>는 그가 발견한 아름다움을 나누는 작품이라는 데 차이가 있다. 캔버스에 석고를 바르고 그 위에 과슈 물감을 칠하는 건 여전하지만, 완성된 석고를 긁어내는 작업은 하지 않는다. 자신과 풍경 사이의 실체보다 자신과 풍경, 그리고 사이의 것을 온전하게 함께 나누는 마음이 중요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추상회화임에도 완벽한 레퍼런스가 있다는 점이다. “작업실 벽면에 덕지덕지 붙여진 사진과 기록들은 모두 제가 나누고 싶은 순간들입니다.” 그는 아내를 통해서 자신이 마주한 풍경을 촬영하고 기록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 장면을 캔버스에 옮긴다. 물론 정물화나 풍경화처럼 그대로 옮기지는 않는다. 여전히 모호한 형태의 그림들이다. 레퍼런스가 있음에도 오히려 더 자유분방한 붓 터치가 눈에 들어온다. 


   “제가 그리는 건 풍경과 나라는 존재 사이에 있는 무엇입니다.” 인터뷰 말미에 그가 한 번 더 강조하듯 말했다. ‘무엇’은 <율려> 작업을 기점으로 완전히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율려> 이전의 무엇은 자신이 풍경에 이끌린 이유라면, <율려> 이후의 무엇은 풍경을 통해서 전달된 감정이다. 우병윤의 세계는 우병윤의 것임에는 변함없지만, 산에서만 머물던 그의 세계는 이제 도시 한복판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교류를 기다린다. 


   갤러리 모순에서 진행하는 우병윤의 개인전 <SPRING OUT>에는 좋은 것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그의 마음이 오롯이 담겨있다. 봄과 도약하는 움직임을 의미하는 ‘스프링’, 내부에서 외부로 확장하거나 틀을 깨고 나아가는 과정을 의미하는 ‘아웃’이란 단어가 갖는 상징처럼 우병윤은 작가로서 새로운 변곡점에 서 있다. 그의 작업은 여전히 어렵게 읽히지만, 그는 좋은 것을 본 기운이 그림에 담겨 있다면, 그 에너지가 고스란히 전달될 거로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