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 Day>
Park Sung Wook
Words | Seo Jae Woo
Photography | YB Kim
박성욱은 전통적인 방법을 중요시하는 도예가인 동시에 자기만의 독자성을 표현하는 도예가이다. 그렇기에 전통적인 방법으로 장식하고 구운 분청사기에 자기만의 빛깔을 입히는 작업에 혼신을 기울인다. “정사각형을 만들더라도 정사각형을 만들겠단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박성욱에게 본인의 독자성을 분청사기에 담는 방법을 물었을 때 돌아온 답변이다. 모순적인 말처럼 들리지만, 그가 손으로 빚고 가마로 구운 분청사기를 살펴보면 그의 답변이 어떤 의미인지 자연스레 받아들여지게 된다. 비스듬하게 세워져 위태로워 보이는 탑 조각이나 형태 자체가 약간 뒤틀린 비정형 달항아리, 사기그릇의 깨진 조각을 이어 붙인 편(片) 작업 등은 모두 특정한 상(像)을 중요시하는 도예가에겐 부적합한 결과물일 수도 있지만 박성욱에겐 그 상태로도 아름다운 결과물이다. “가령 달항아리를 만든다고 생각하면 자연스레 달항아리라고 여겨지는 형태를 빚겠죠. 이미 존재하는 기물이니까요. 다만 상을 그리고 작업할 때와 지우고 작업할 때는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옵니다. 제가 빚은 달항아리는 정해둔 상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익숙하게 접한 형태와는 미묘한 차이가 생기죠. 저에게 아름다움의 의미를 묻는다면, 두고 보는 거라고 답할 수 있겠네요. 정해진 상이 없기에 며칠을 계속해서 바라봐야만 아름다움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관찰하면 뒤틀린 형태, 굳기 전에 나뭇잎이 표면에 떨어져 만든 흔적, 백톳물이 흘러 생긴 자국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어요.”
분청사기는 백토를 입힌 회청색 사기라는 뜻의 ‘분청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의 준말이다. 이름 그대로 청자를 만들던 흙으로 그릇을 빚고, 그 위에 묽은 점토에 산화물을 섞어 만든 혼합물인 백토를 발라 구운 자기다. 분청사기를 선보이는 도예가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백토를 그릇 표면에 장식하는데, 박성욱은 덤벙 분장기법을 활용해 작업한다. 덤벙 분장기법은 15세기 조선 분청사기 시기의 독창적인 프로세스로, 백토를 물에 풀어 만든 걸쭉한 용액에 빚은 그릇을 담근 후 꺼내는 방법이다. 작업 과정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기법의 이름은 그릇을 백톳물에 담글 때 나는 ‘덤벙’하는 소리에서 유래됐다. 그릇 표면을 음각해 움푹 들어간 부분을 백토로 채우거나, 귀얄(넓고 굵은 붓)로 그릇 표면을 백토로 칠하는 장식기법에 비해 정교한 매력은 떨어지지만, 그릇이 백톳물에 담기는 순간에 형태와 색, 질감이 서로 관계 맺고 결부하는 과정에서 도출되는 결과물은 도예가의 손으로는 결코 표현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멋을 품는다. “물론 그릇을 백톳물에 담그는 것만으로 자기의 색채를 담기엔 무리가 따르겠죠. 그래서 질문이 필요한 거예요. 어떻게 해야 다른 분청사기를 만들 수 있을까? ‘덤벙’ 담갔다가 꺼낸 뒤 표면에 무늬를 더할까? 그런데 무늬를 더하면 덤벙기법의 의미를 스스로 퇴색시키는 게 아닌가?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 저는 무수히 많은 질문을 거듭한 끝에 새로움을 위해선 도예에 대한 세간의 통념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우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 황금 비율로 여겼던 것, 올바른 빛깔이라 생각한 것에서 벗어나 ‘덤벙’ 담갔다 나온 그릇의 관계성을 살피는 거예요. 단순하게 형태만을 보는 게 아닙니다. 도예가가 하나의 영구적인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거치는 과정을 돌아보는 것이죠. 제가 도자기를 통해서 발견하는 건 시간이 축적한 형용할 수 없는 여정에 가깝습니다.” 박성욱이 빚은 분청사기가 과거의 분청사기와는 다른 형상으로 존재하는 이유이다. 혹자는 그의 작업을 전통에 현대성을 부여한다고 말하지만, 그의 작업은 도예가로서 자질을 지키고, 도예가의 아집을 내려놓은 결과물에 가깝다.
박성욱이 도예가로서 대중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관계 맺음이다. “나무와 금속을 사용해 만든 테이블이 있다고 생각해 봐요. 나무와 금속을 그저 접착하는 것만으로는 좋은 테이블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성질이 다른 물성은 각각의 성질을 이해하지 못하면, 한쪽에서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거든요. 목수나 디자이너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한 이유이죠. 이건 도예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표면을 백토로 분장하는 분청사기의 경우 계속해서 공부에 매진해야만 하죠.” 박성욱은 서로 다른 물성의 성질을 이해하는 노력이야말로 도예가에게 필요한 자세라고 믿는다. 이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달항아리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지혜다. 대중에게 알려진 달항아리는 대부분 ‘백자 대호(白磁大壺)’이지만, 박성욱은 분청 달항아리를 다양한 크기로 선보이며 도예가로서의 입지를 다진 인물이다. “달항아리가 갖는 상징성은 이미 도예가의 손에서 벗어난 것 같습니다. 어느 시점부터 달항아리의 상징성이 대두되며 인테리어 상품처럼 팔려 나가기 시작했죠. 요즘 제가 경계하는 것이 바로 이런 지점입니다. 그래서 늘 달항아리가 상징화된 이 시점에서 어떤 달항아리를 만들 수 있는가를 고민하죠. 저는 소망과 염원, 부의 상징으로 읽히는 달항아리가 아닌, 도예가로서 달항아리를 만드는 이유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박성욱이 달항아리를 빚는 건 커다란 대접 두 개를 잇대어 만드는 제조 과정이 그의 작업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는 대접 두 개가 맞닿는 과정에서 도예가가 했을 무수한 고민을 떠올리고, 완벽하게 하나의 형태가 된 달항아리를 통해서 서로가 연결된 삶을 그린다.
관계 맺음은 박성욱이 사금파리(사기그릇의 깨진 조각)에서 영감을 받은 편 연작과 자연스레 이어진다. “대학 시절 수업으로 옛 분청사기 도예지를 방문한 적이 있어요. 도예가들의 삶을 상상하며 오래된 터를 둘러보는 학습 과정이었죠. 한번은 가마 주변에 쌓인 낙엽을 들쳤는데 사금파리들이 보이더라고요. 모양들이 재미있기도 했고, 도자기에 관한 호기심도 있어서 그걸 몇 개 주어와 학교에서 펼쳤어요. 묘하더군요. 사금파리에 담긴 제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시간이 스쳐 지나가는 것만 같았죠. 그래서 그걸 모아서 졸업 작품을 만들었어요. 사금파리를 이어 붙여 배를 구현했는데, 당시에는 말도 못 하게 엉성한 작품이었죠.” 박성욱은 오래된 서랍장에서 발견한 수첩의 페이지를 펼쳐 읽듯이 과거를 회상하며 편 연작의 시작점을 설명했다. 현재 그가 작품으로 선보이는 편 연작은 버려진 사금파리를 모아서 이어 붙인 것이 아니다. 옛 가마터에서 본 다양한 사금파리의 색과 질감을 염두에 잘게 자른 흙 조각을 덤벙기법으로 분장한 후 장작가마에 넣어 고온의 불에 굽는다. 그렇게 완성한 조각들은 각자의 시간을 품은 것처럼 독자적인 형태와 질감, 표면을 갖는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각에 붓질한 것처럼 결이 있어요. 종이의 흔적이에요. 덤벙기법으로 분장한 조각은 가마에 들어가기 전, 건조되는 과정에서 수축하거든요. 보통 2~3cm 수축한다고 보면 돼요. 일반적으로 나무판에 조각들을 올려두는데, 조각이 수축하는 과정에서 나무판의 결과 맞물려 갈라지는 현상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나무판에 종이를 깔았거든요. 그 덕분에 갈라짐이 줄어들었는데, 조각과 종이와 맞닿은 지점에 붓질한 것 같은 흔적이 생기더라고요.” 박성욱은 의도치 않은 흔적을 편 작품의 장식으로 사용했다. “결이 보이는 쪽으로 조각들을 이어 붙이니 숲이 보이더군요.” 그의 편 연작 중 하나인 <White Forest> 또한 두고 보는 과정에서 발견한 아름다움의 결과이다.
편 연작은 평면 작업으로 벽에 장식처럼 걸려 풍경처럼 자리한다. 흥미로운 건 조각을 감싼 프레임이다. 평범한 나무 박스처럼 보이는데, 하단에 손잡이들이 달려있다. “대부분 제가 수집한 옛 가구의 서랍장을 프레임으로 활용했습니다.” 박성욱의 말을 통해 유추하면, 도예가로서의 시간을 기록하고 보관하기 위한 작업일지도 모른다. 그가 갤러리 모순에서 보이는 작업 모두 어떤 사물이나 형상을 만든 것이 아니다. 도예가가 흙을 반죽하고, 그 흙에 분장하고, 유약을 발라 장작 가마에 앉아 구운 후 탄생한 작업을 바라본 시간에 관한 것이다. <Night and Day>라는 전시명이 의미하는 건 결국에 도예가로서 살아온 그의 삶이다. 물론 밤에는 흑유(黑釉) 작업을 여럿 공개한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지만 그가 구현한 검정은 온전히 검은색이 아니다. 검정에 파랑이 스며들어 있는 식이다. 결국에 갤러리 모순에서 전개하는 전시는 흑과 백의 강렬한 대비를 보여주기 위한 전시가 아니라 흑과 백의 조화를 보여주는 전시이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레 도예가로서 그가 살아온 여정이다. “주제는 항상 같아요. 관계와 연속성, 두 가지의 물질. 그런 걸 계속 말하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예요. 도자기 표면의 흔적처럼 제 흔적들이 담긴 전시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