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CTURNAL SHAPES
Lee Soobin
11 - 27 December
Words & Photography by YB Kim
이수빈의 조각은 나무와 돌이라는 감각적 재료를 빌려 인간의 내면과 세계의 감정을 조용히 드러내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그의 작업은 단순한 형상의 재현이 아니라, 재료 자체가 지닌 생명성과 고집을 읽고 그 안에 잠든 존재를 깨우는 일에 가깝다. 작가의 손끝에서 깎여 나오는 윤곽은 의도적 조형이기 이전에 이미 재료 속에 자리 잡고 있던 감정과 기척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동물과 인간의 형상은 사실성보다 정서적 본질에 가닿으며, 이는 작가가 사물을 바라보는 철학적 태도와 닿아 있다.
그에게 조각은 단지 형태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마음속 가장 어두운 방을 들여다보는 행위에 가깝다. 이러한 태도는 특히 ‘밤’이라는 시간성과 깊이 연결된다. 밤은 작가에게 고요한 휴식의 시간이 아니라, 삶의 고통과 마주하는 순간이며 가장 깊은 생각이 깨어나는 때다. 그는 스스로를 “밤의 정서 속에서 작업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몸을 써서 작업하는 삶을 시작한 뒤, 밤이라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들러붙었다는 고백처럼, 밤은 그에게 내면을 파고드는 침잠의 시간이다.
이번 전시 〈Nocturnal Shapes〉는 바로 이 ‘밤의 감정과 풍경’을 조각적 언어로 구현한다. 어둠 속에서 실루엣처럼 떠오르는 형상들, 그림자와 고요가 만들어내는 낯선 감각, 밤이 비로소 드러내는 내면의 층위가 작품의 중심을 이룬다. 작가가 만들어낸 동물과 사람의 모습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가장 순수하고 나약하며 동시에 견고한 생명에 대한 상징이다. 그는 동물을 ‘순수한 존재이자 내면의 거울’로 바라보며, 그러한 형상은 작가 자신의 삶 속 감정의 기호처럼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돌을 이고 지는 형상들’은 작가의 사유가 깊어지는 지점을 보여준다. 돌을 든 조각들은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라, 작가가 오래 사유해온 “삶의 고통을 들고 함께 걷는 방식”을 은유한다. 작가는 돌을 조각을 위한 받침이 아닌 하나의 주체적 재료로 사용하며, 강가와 바다에서 직접 주워온 돌의 자연적 결을 그대로 살려 조각과 결합시킨다. 이 형상들은 각자의 무게를 지닌 삶처럼 보이며, 그 무게는 결국 우리 모두가 짊어지고 있는 고통의 층위를 상징한다.
나무는 그의 작업에서 또 다른 시간성과 감정의 층위를 이룬다. 작가에게 나무는 따뜻하고 유연한 재료인 동시에, 고집스럽고 생명적이다. 마른 뒤에도 환경에 따라 비틀리고 팽창하는 나무의 성질은 연약하지만 강인한 인간의 면모와 닮아 있다. 그는 나무의 결을 따라가며 그 안에 숨어 있던 감정을 꺼내듯 조심스럽게 형태를 세운다. 조각의 표면에 남은 칼자국과 결은 단순한 흔적이 아니라 재료가 스스로 말하는 언어이다.
이수빈의 작업에는 그가 걸어온 삶의 여정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문학과 영화를 좋아하고 에디터로 일하며 글을 다루었던 그는 늘 예술의 주변에서 사유하고 관찰하던 사람이었다. 기능을 위한 제작보다 ‘생명을 가진 형상’에 끌렸던 감각은 결국 그를 조각으로 이끌었고, 직장 생활과 프리랜서를 거쳐 전업 작가로 나아가는 과정은 자연스러운 흐름처럼 이어졌다.
이번 전시 〈Nocturnal Shapes〉는 이러한 오랜 질문과 탐구가 응축된 자리이다. 밤이라는 감정 속에서 태어난 형상들, 각자 다른 무게를 품은 존재들, 그리고 나무와 돌의 생명성이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조형적 풍경은 관객을 밤의 감각 속으로 이끈다. 작품은 단순히 전시장에 놓인 조형물이 아니라, 관객이 그 사이를 거닐며 그림자와 실루엣, 표면의 결을 천천히 바라보는 순간 비로소 완성된다.
이 전시는 나무와 돌이라는 오래된 재료가 작가의 내면과 밤의 정서를 만나 탄생한, 명상적이고 조용한 세계이다. 침묵 속에서 깨어나는 형태들, 각자의 무게를 지닌 존재들, 그리고 밤이 허락하는 사유의 깊이는 관객에게 또 다른 차원의 감각을 열어줄 것이다. 이 세계는 어둠에서 태어났지만, 그 자체로 깊은 빛을 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