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ZEN SILENCE
Chung Sukyung
13 -29 November
Words & Photography by YB Kim
임지연의 작업은 건축적 사고와 도예적 실천이 맞닿는 자리에서 빚어진다. 그녀의 기물은 단순한 생활의
도구가 아니라, 흙을 통해 구축된 하나의 작은 건축물이다. 직선으로 이루어진 선과 단정한 평면은 공간
을 구획하는 벽처럼 서 있으며, 작품에 뚫린 작은 구멍들은 창을 연상시키며 안과 밖을 연결한다. 이는 단
순한 장식이 아니라, 공간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도자라는 매체 안에서 드러나는 방식이다.
어린 시절부터 건축에 매료되었던 임지연은 시각디자인을 시작점으로 삼았지만 곧 도예의 길로 들어섰
다. 작업실에서 흙을 만지며 그는 건축에서 느끼던 공간적 긴장과 구조적 사고를 다시금 발견했고, 이를
자신의 조형 언어로 발전시켜왔다. 그에게 도예는 작은 그릇을 빚는 행위를 넘어, 구조와 질서, 빛과 그림
자를 탐구하는 과정이다. 매끈한 선과 단호한 면, 그 안에 뚫린 작은 창은 모두 건축적 사유의 흔적이며,
동시에 삶 속에서 경험되는 공간의 감각을 환기한다.
그녀의 기물은 기능적 물건에 머무르지 않는다. 흙을 쌓고 깎으며 드러나는 직선은 건축적 질서를 연상시
키고, 소성 과정을 거치며 남겨진 표면의 미세한 결은 재료가 스스로 말하는 언어다. 때로는 의도적으로
남겨진 작은 흔적과 공백, 때로는 불길이 만들어낸 우연의 자국은 기물이 완벽한 형태로 고정되는 것을
거부하며, 살아 있는 공간으로서의 성격을 부여한다. 임지연은 이를 “도자기는 결국 작은 건축물입니다.
빛을 받아들이고, 안과 밖을 나누며, 사용되는 순간 또 다른 공간이 열리죠.”라고 말한다.
이번 개인전 〈Constructed Light〉 은 이러한 작가의 사유가 한층 명확히 드러나는 자리다. 과거의 작업
이 기물의 쓰임과 형태의 긴장에 주목했다면, 이번 전시는 건축적 조형의 언어가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난
다. 단정한 직선과 평면, 벽처럼 세워진 면들이 긴장 속에서 서로 마주하며, 작은 창과 같은 개구부는 외부
의 빛과 시선을 받아들이며 기물 내부에 새로운 공간감을 불러온다. 이는 단순히 도자라는 매체의 확장이
아니라, 빛과 구조, 물질과 여백이 맞물려 만들어내는 건축적 풍경이다.
임지연의 작업 세계에는 일관된 태도가 있다. 완벽하게 닫힌 표면보다, 시간이 더해지며 흔적이 남고 변
화를 허용하는 구조를 선택한다는 점이다. 기물이 삶 속에서 사용되고 손에 쥐어지며 경험될 때, 그 흔적
은 마모가 아니라 기록이며, 변화는 소모가 아니라 생명의 증거가 된다. 그녀는 기물을 통해 일상의 공간
을 새롭게 체험하게 하며, 작은 물건이자 건축적 사유의 매개체로서 기능하게 한다.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단지 진열된 오브제가 아니라, 관객과의 만남 속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서로 다른
직선과 면들이 전시장의 공간 안에서 어우러질 때, 그것은 더 이상 하나의 기물이 아니라 작은 건축 군집
이 된다. 관객은 그 사이를 거닐듯 바라보며, 작품의 안과 밖을 오가고, 빛이 드나드는 구멍을 통해 또 다
른 차원의 풍경을 감각하게 된다. 이는 건축에서 느끼는 공간적 경험과 다르지 않다.
임지연은 전통적인 도예 기법을 존중하면서도, 그것을 현대적 감각과 건축적 시선으로 변주한다. 흙이라
는 오래된 재료를 통해 새로운 조형 언어를 구축하고, 불완전함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도자와 건
축의 경계를 허물고자 한다. “흙은 단단하지만 동시에 유연한 재료예요. 건축이 구조를 통해 공간을 정의
한다면, 도예는 손과 불을 통해 또 다른 구조를 만들어내죠.”라는 그녀의 말은 이번 전시의 본질을 가장
잘 설명한다.
〈Constructed Light〉 는 결국 흙과 빛, 그리고 건축적 사유가 교차하며 응축된 풍경이다. 이번 전시는
임지연의 오랜 탐구가 집약된 결과이자, 그녀의 온전한 세계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다. 전시장에 놓인 기
물들은 단순히 그릇이나 조형물이 아니라, 공간과 공간을 잇는 창이며, 삶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확
장되는 작은 건축물이다. 관객은 이 자리에서 흙과 건축이 만나 만들어낸 빛의 구조를 경험하며, 물성과
공간, 안과 밖의 경계가 교차하는 찰나를 새롭게 마주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