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W BEING

Wo Sihyeong


Words & Photo by  YB Kim


우시형의 도자는 불과 흙이 만난 이후의 상태에서 시작된다. 유약으로 덮이지 않은 표면, 장작가마 안에서 생겨난 예측 불가능한 흔적들, 그리고 작가가 끝내 손대지 않기로 선택한 수많은 우연의 층위들. 그의 작업은 무엇을 더하는 일보다, 어디까지 남겨둘 것인가를 결정하는 과정에 가깝다.


그는 스스로를 흙을 통제하는 사람이라기보다, 흙이 지나온 시간을 받아들이는 사람에 가깝다고 말한다. 수십 시간 불을 지피며 얻는 결과는 언제나 부분적으로만 예측 가능하다. 작가는 가마의 구조와 불길의 흐름, 온도의 차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남는 20–30퍼센트의 영역은 인간의 계산을 벗어난다. 그 불완전한 영역이야말로 그를 다시 가마 앞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이유이자, 작업을 지속하게 하는 가장 큰 동력이다.


무유 기법을 선택한 이유 역시 그 불완전함에 대한 신뢰와 맞닿아 있다. 작가는 첫 가마를 땠던 겨울, 눈이 내리던 날을 기억한다. 가마 안에서 흙 위로 내려앉던 재가 녹아 흐르며 만들어내던 장면이, 소복이 쌓이던 눈의 풍경과 겹쳐 보였다고 말한다. 그 순간 그는 인간이 만들어낸 장식보다 자연이 남긴 흔적이 더 깊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이후 그의 도자는 점점 더 설명을 덜어내고, 불이 남긴 표정에 가

까워졌다.


우시형의 작업은 그가 걸어온 삶의 방식과도 닮아 있다. 회화를 꿈꾸다 우연히 선택한 도자 전공, 적응하지 못했던 학창 시절, 군 복무 이후 다시 돌아와 혼자 흙을 만지며 시작된 작업의 시간들. 미국 유타의 장작가마 학교, 호주의 시골 작업실들, 그리고 결국 아무 연고도 없던 음성의 땅에 작업실을 짓기까지. 그는 늘 낯선 환경 속에서 몸으로 부딪히며 배웠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가마의 구조와 불의 성질을 자신의 언어로 흡수해 왔다. 지금 사용하는 그의 가마 또한 여러 나라에서 경험한 방식들을 스스로 조합해 만든, 하나의 실험적인 구조물이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화병과 다양한 기물들은 이러한 시간의 축적 위에 놓인 결과물이다. 이 작업들은 특정한 용도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사용과 감상의 경계에 머문다. 꽃이 꽂히지 않은 화병은 그 자체로 하나의 조형이 되고, 비어 있는 내부는 오히려 형태를 더욱 또렷하게 드러낸다. 입구가 넓게 벌어진 구조, 길쭉하게 뻗어 있는 몸체, 불균질하게 흐른 표면은 기능적 효율보다 물질이 스스로 만들어낸 리듬에 가깝다.


전시 제목 〈Raw Being〉은 이러한 태도를 가장 간결하게 드러낸다. ‘Raw’는 가공되지 않은 상태, 불 이후에도 덧입혀지지 않은 물질의 얼굴을 뜻하고, ‘Being’은 목적이나 쓰임이 정해지기 이전의 존재 자체를 가리킨다. 우시형의 도자는 완성된 상품이라기보다, 잠시 이곳에 놓인 하나의 상태에 가깝다. 그것들은 무엇이 되기 위해 존재하기보다, 그저 존재하기 위해 놓여 있다.


작품들은 크지 않고, 소리를 내지 않으며, 관람자에게 어떤 해석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낮은 높이로 공간에 흩어져, 표면 위에 남은 재의 흔적과 불의 흐름, 흙의 밀도를 천천히 바라보게 만든다. 그 앞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묻게 된다. 이것은 무엇인가, 왜 이런 모습인가. 그러나 이 작업들은 그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대신 묻는 쪽의 속도를 늦추고, 침묵 속에서 형태가 되기 이전의 존재를 함께 바라보도록 이끈다.


〈Raw Being〉은 결과보다 과정에 가까운 전시이며, 의미보다 상태에 가까운 풍경이다. 불을 지나온 흙이 더 이상 장식되지 않고, 설명되지 않은 채 놓여 있는 자리. 그곳에서 도자는 사물이기 이전에 하나의 몸이 되고, 하나의 숨결이 된다. 그리고 그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솔직한 형상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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