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rt of Steel>
Kim Hongyong | 김홍용
7 - 23 November 2024
Words | Seo Jae Woo
Photography | YB Kim
금속공예가 김홍용의 작품은 특정한 기능이 포함된 아름다운 형태의 금속 조각이다. 그가 갤러리 모순에서 선보이는 작품 또한 블루투스 연결이 가능한 스피커로 기능한다. 그 때문일지 그의 작품 앞에 서면 눈을 크게 뜨고 형태를 감상할지, 작품에서 나오는 소리에 집중할지 머뭇거리게 된다. “스피커로 기능하기 때문에 소리도 분명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작품을 편견 없이 보면 좋겠습니다. 제가 만든 것 또한 공예품이니까요.” 김홍용은 자기 작품에 사람들의 시선이 머물길 바란다. 금속공예가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김홍용은 좋은 것을 누구보다 먼저 받아들이는 환경에서 성장했다. 1985년도에 공무원인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강남으로 이사를 오게 되어 ‘잔스포츠’ 가방을 메는 아이들 사이에서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가방을 메고 초등학교에 다녀야 하는 불운을 맞이했지만, 그 덕분에 해외 유명 브랜드를 빠른 나이에 접하는 기회를 부여받았다. 중학생 때는 이태원에 있는 티셔츠 실크스크린 업체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유명 헤비메탈 그룹의 티셔츠를 제작했는데, 그 또한 동시대의 패션을 빠르게 읽어낼 기회였다. 김홍용은 영락없는 ‘패션키드’의 모습으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일본 패션 잡지 <맨즈논노>를 읽었고, ‘리바이스’와 ‘빅존’ 같은 청바지 브랜드의 역사를 파고드는 것은 물론, 브랜드의 상징적인 청바지 모델을 입기 위해 기꺼이 돈을 벌었다. 경제적으로 엄한 집안 분위기 때문에 같은 옷을 반복해 입어야 했지만, 그럼에도 멋지게 옷을 입겠다는 그의 의지는 뛰어난 심미안을 갖는 발판이 됐다. 패션에 열광한 소년이 금속공예과를 대학 전공으로 선택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누구보다 패션을 동경했기 때문이다. “의상학과는 제가 잡지에서나 보는 멋진 친구들이 가는 곳이라고 여겼어요. 패션을 동경해서 패션을 공부하는 사람들까지도 동경하게 된 거죠. 대학 전공으로 금속공예과를 선택한 건 친구를 따라 자연스럽게 등록한 미술 학원이 계기가 됐어요. 나름 적성에 잘 맞더라고요. 손재주만큼은 자신 있었거든요. 공예과를 졸업한 엄마와 미대를 다니던 누나의 영향으로 가족도 저에게 미술대학을 권했고, 당시 또래 아이들처럼 자동차를 좋아했으니 금속을 다루는 학과에 입시 원서를 낸 것이죠.”
십 대 시절 김홍용의 미의식은 패션 잡지와 옷을 통해 완성됐다면, 이십 대 시절 김홍용의 미의식은 자동차를 통해 완성됐다. “경주용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어요. 직접 경주에 참여하고 싶어 운전 테스트도 받아본 적이 있을 정도예요. 물론 실력이 부족해 경주에 참여는 못 했지만, 그 덕분에 자동차 튜닝 작업을 배우게 됐죠. 테스트 중에 제가 금속공예과를 다닌다고 말하니까, 다들 제가 자동차를 쉽게 개조할 거로 착각한 것 같아요. (웃음) 영화 <분노의 질주>를 보면 차를 빠르게 가속하기 위해 빨간색 버튼을 누르잖아요. 산화질소를 연료로 사용하는 엔진 출력 강화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인데, 이를 업계에선 ‘니트로 부스터’라고 칭하거든요. 그 기술을 한국에 처음 들여온 분에게 약 3년간 튜닝 기술을 배웠고 이후 10년 가까이 자동차 튜닝 업계에서 일했어요.” 김홍용은 자동차 튜닝을 직업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돈도 받지 않았고, 오로지 자동차를 좀 더 멋지게 만드는 데 매진했다. 학교에서 배운 금속공예 공정을 자동차 튜닝에 적용했고, 반대로 자동차 튜닝에서 영감받아 자기만의 색깔이 분명한 금속공예 작업을 선보였다.
자동차 엔진 부품을 해체해 조립하거나, 피스톤을 형상화한 김홍용의 작업은 늘 육중한 기계 덩어리로 보였다. 그는 금속공예가로서 자기만의 이야기를 담은 작업을 하고 싶었고, 당시 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자동차를 작업의 요소로 활용했다. 무엇보다 그는 쓸모 있는 아름다운 물건을 좋아했다. 옷과 자동차에 매료된 이유도 향유할 수 있는 즐거움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자동차의 헤드라이트처럼, 제 작업도 공간에서 빛을 발산하는 조명으로 기능하면 좋겠다고 싶었죠. 그렇게 자동차의 피스톤을 닮은 조명 작품이 세상에 나온 거예요.” 거대한 엔진 같은 그의 작업은 여느 금속공예가의 작품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다름을 통해 자기만의 독자성을 확립했지만, 한편으론 손맛을 중요시 여기는 동료 금속공예가의 작업 방식과 달랐기에 자신의 작업이 공예가 맞는지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우연한 기회로 디자인 페어에 참가했어요. 디자인 페어는 제품·가구·산업 디자이너들이 주로 참여하는 자리니까, 공예가와는 다른 시선으로 제 작품을 평가받을 수 있겠다 싶었죠. 다행히도 그들은 제 작품을 보고 영락없는 금속공예가의 작업 같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당시에 생각보다 많은 응원을 받은 덕분에 금속공예가로서 당당히 작품 앞에 설 수 있게 됐어요.”
김홍용이 갤러리 모순에서 선보이는 금속 조형물은 독자적인 소리를 품으며 공간에서 조각처럼 존재한다. 여전히 그가 만든 것이 스피커인지, 조각인지 감이 잡히지 않지만, 그런 혼란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건, 그가 묵묵히 자기만의 아름다움을 좇는다는 확신이다. 그는 초소형 스피커 유닛을 개발한 중소기업의 의뢰로 이색적인 스피커 케이스 디자인에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스피커 조각’ 작업을 꾸준하게 선보이고 있다. 스피커 조각의 특징은 자동차의 색채가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언젠가부터 제 작업을 보면 자동차만 보이더라고요. 저만의 독자성을 구축하기 위해 자동차의 요소를 활용했는데, 이젠 자동차에 의해 제 삶과 작업의 폭이 좁아지더군요. 그래서 오래전부터 기록한 작업 노트를 다시 펼쳐봤어요. 거기에 저의 시간이 전부 담겨 있는 거예요. 그렇게 감상하는데, 문뜩 원뿔 기둥을 그리던 미술을 처음 접한 시절의 제가 생각나더군요. 제 작업은 결국에 제가 경험한 아름다움을 시각화한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스피커 조각이 무구한 소년이 그린 미지의 생명체처럼 보이는 이유이다.
갤러리 모순에서 선보이는 김홍용의 개인전 타이틀은 <HEART OF STEEL>이다. 어린 시절부터 줄곧 아름다운 것을 좇던 김홍용의 열망이 담긴 따뜻한 금속이란 의미를 담았다. 전시장에 놓인 스피커 조각은 형태에 따라서 같은 음악이라도 다르게 표현한다. 특정한 스피커 조각은 멜로디보다 보이스를 재현하는 데 강점이 있고, 특정 스피커는 뻗어 나가는 소리의 범위를 의도적으로 제한해 스피커 조각 앞으로 가야만 제대로 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이는 그가 성장하며 경험한 아름다운 세계를 각각의 스피커 조각에 응축해 담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또 다른 확신이 선다. 김홍용은 분명 관객들이 스피커 조각을 통해서 작가의 경험과 직면하는 것에 머물기보다 자신의 아름다운 시절을 떠올리길 기대할 것이다. 경험이야말로 자기 삶에 필요한 진정한 니트로 부스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