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LD LAYERS

Park Jongjin  /  박종진


Words by Seo Jaewoo / 서재우

Photo by  YB Kim


   도예가 박종진은 대학에서 전통 도예를 공부했지만, 늘 새로운 시도를 즐겼다. 백자 달항아리 상·하부를 대비되는 색으로 채우거나 목공예 짜임 기법을 활용해 나무와 흙을 접목한 백자를 만든 것처럼, 전통 도예 기술을 자기만의 조형 언어로 체득해 표현하는 걸 즐겼다. 서로 다른 성질의 만남은 그의 작업을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이자 학창시절 그가 도예가로서 주체성을 찾는 해법이었다. 

 

    도예가로서 자기만의 스타일을 찾고자 한 박종진의 열망은 대학 졸업 이후에도 계속됐다. 색과 소재의 대범한 활용 덕분에 참신성을 인정받았지만, 일각에선 누구라도 시도할 수 있는 작업 방식이란 우려 섞인 반응을 보였다. 그가 영국 유학을 결심한 계기도 자신의 작품에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영국에서 도예를 배우기로 결심한 건, 전통을 거스르지 않되 매번 새로운 감각을 조형 언어로 표현하는 그들의 디자인 때문이에요. 파격적인 색상 활용과 그래픽 요소를 강조한 2012년 하계올림픽 엠블럼이 그랬고, 동양의 도자기 미학을 자신의 것으로 승화한 영국 1세대 도예가인 버나드 리치와 루시 리의 작품이 그랬죠.” 비록 그가 수학한 영국 카디프 메트로폴리탄 대학교의 도예 전공 석사과정은 1년이란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새로운 물질의 탐구를 독려하는 학내 분위기와 도예 연구에 필요한 제반 시설을 갖춘 환경 덕분에 도자기에 관한 근원적 고민을 해결할 기회를 제공받았다.

 

    박종진은 키친타월에 물을 뿌리거나 접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형태를 만들고 해체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자기만의 도예 공법을 연구했는데, 당시 그에게 작업의 실마리를 제공한 건, 재사용하려고 모아둔 키친타월 더미였다. 그는 키친타월 더미를 통해서 카디프 지방 해안가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절벽을 떠올렸다. 절벽의 지층에 역사가 담겨 있듯이 키친타월 더미에 ‘그간 실험해 얻은 모든 것‘이 담겨 있는 것만 같았다고. “도예가로서 제가 표현하고 싶은 건 아름다운 형태가 아니라 완결성을 좇는 도예가의 번뇌와 노력이 깃든 숭고한 시간이라는 것을 그 찰나에 깨우쳤습니다.”

 

    키친타월 낱장에 흙물을 한 겹씩 바르고 겹겹이 쌓아 형태를 구축한 종이 덩어리를 가마에 넣는다. 높은 온도의 불기운 속에서 키친타월은 타버리고, 키친타월에 발랐던 흙물은 키친타월 낱장의 형태로 단단하게 굳어 지층 형태의 도자 조형물이 된다. 박종진의 대표 작업인 <예술적 지층(Artistic Stratum)> 연작이 도자기임에도 종이 더미처럼 보이는 이유이다. ”<예술적 지층> 연작은 공간에서 미확인 물체처럼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켰으면 해요. 단단하게 굳은 종잇조각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도자기인 것처럼, 소재와 형태, 기능과 색에 반전 매력을 담아냈죠.“ 


    박종진의 도예는 자유롭다. 형태보다 적층 효과에 집중했기 때문에 원하는 적층 효과가 나오면 어떤 형태로든 변형이 가능하다. 그는 직사각형 기둥 중앙에 구멍을 뚫거나, 코일링 성형기법을 적용하여 달항아리로 탈바꿈하며 익숙함에 낯섦을 불어 넣는다. 가마에서 형태가 무너져 나온 작품인 <붕괴된 형태(Collapsed form)> 연작을 작업으로 선보일 수 있는 것도 구워낸 도자기를 언제든 새롭게 가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전통 도예가 하나의 완결성을 위해 집요하게 파고드는 과정이라면, 그의 도예는 스스로 가능성을 찾아 나서는 과정이자 그가 관계하는 세상에 관한 이야기다. “원래라면 지금쯤 다른 작업을 시도하려고 했어요.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주기로 완전히 새로운 작업을 선보이기로 다짐했거든요. 그런데 쌓는 작업에는 다함이 없는 것 같아요. 삶도 그렇잖아요? 애써 새로운 방법을 찾지 않아도, 살다 보면 자연스레 변하는 게 우리의 삶이니까요.” 


    <패치(Patch)>. 박종진의 현재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업이다. 흙물이 범벅된 키친타월로 만든 적층 블록들을 손으로 정성스럽게 이어 붙여 하나의 아름다운 패턴을 만들어 낸 후 가마에 구워내는 작업으로, 자투리 천 조각들을 모아 만든 조각보를 떠올리게 한다. 박종진은 적층 블록의 색과 형태의 조합에 따라서 독특한 미적 가치를 창출하는 <패치> 작업을 통해 삶의 지혜를 깨닫는다. “블록과 블록을 연결하는 과정은 굉장히 즉흥적인데요, 작업 과정은 꽤 고돼요. 일반적으로 <패치> 작업엔 1천 장의 키친타월을 사용하는데, 그렇다는 건 1천 번 흙물을 바르고 색칠하고, 1천 장의 종이를 쌓는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게다가 블록과 블록을 패치 작업처럼 이어 붙여야 하니 블록 간의 관계도 고려해야 해요. 이 색과 저 색이 잘 어울리는지, 블록의 결 방향은 어떤지 등등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죠. 그런데 완성한 결과물을 보면 제가 한 고민이 전체 작업을 완성하는 데 있어 아주 작은 결정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게 돼요. 저는 이를 통해서 삶에서 발생할 수 있는 크고 작은 사건을 유연하게 대처하게 됐어요. 현재를 삶의 종착지가 아닌, 여정으로 가는 길목으로 바라보게 된 거죠.”

 

    갤러리 모순에서 진행하는 박종진의 개인전 타이틀은 <BOLD LAYERS>이다. 전시장에 놓인 그의 작품에 새겨진 결들이 도예가의 숭고한 삶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박종진은 자신이 키친타월 더미를 통해서 새로운 공예 방법을 떠올린 것에 관해 운이 작용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매 순간 도예가로서의 도전을 멈추지 않았기에 평범한 물건에서 자기만의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던 것이다. 결국에 전시 <BOLD LAYERS>는 한 개인이 만들어낸 굵직한 순간의 기록이자, 관객의 여정에 필요한 다양한 층위의 이야기들이 겹겹이 쌓이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