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ved Out>
Park Kyoungyoon
Words | Seo Jae Woo
Photography | YB Kim
박경윤 작가의 작업실에 방문해 몇 시간 동안 경험한 건 단풍나무 패널을 날카로운 끌(chisel)을 사용해 쉼 없이 깎는 작가가 만들어 내는 ‘위로의 선율’이다. 박경윤의 삶은 단순하다. 매일 밤 11시가 되면 작업실로 향하고 다음 날 오후 5시까지 반복해 나무를 끌로 조각한다. 모든 생명이 잠든 시간에 자신의 최대 에너지를 쏟아내는 삶은 어느덧 30여 년이 흘렀지만, 박경윤은 장례식처럼 중대한 일정을 제외하고는 자기 의지로 작업을 멈춘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에게 나무의 표면을 반복해 깎는 이유를 물으면 “생각을 없애기 위한 방법”이라는 막연한 답변이 돌아온다. “저에게 결과물은 큰 의미가 없어요. 의미는 만들 때까지만 존재하죠.” 작품에 담고자 하는 의미를 묻자, 더 난해한 답변이 돌아온다. 실제로 그에게 작업은 특정한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기분 좋은 선율에 가깝다. 마음에 드는 문장을 곱씹고, 음악을 반복해 청취하는 데 별다른 이유가 필요 없는 것처럼, 그저 마음이 끌리는 대로 실천하는 것이 작업인 것이다.
누구나 잊고 싶은 기억이 존재한다. 박경윤 또한 평탄치 못한 삶을 살았다고 고백한다. 그에게 나무는 자신의 고통을 잊게 해주는 캔버스이다. 화가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듯이 그는 사각형 나무 패널을 끌로 파고 들어간다. “나무로 작업하는 분들은 나무의 결을 살리는 작업을 하지만 저는 결을 지우는 작업을 해요. 의도적으로 결이 도드라지지 않은 단풍나무를 사용하는 것도, 그나마 보이는 나무의 결을 끌로 깎아 지워내는 것도 그 이유이고요. 천연 안료를 사용한 작품은 색이 더해져 금속처럼 보이죠.” 박경윤의 설명 대부분은 작업실에 빼곡하게 쌓인 고전문학책의 내용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처럼 다가오나 명확한 사실은 그가 만들어 낸 작품이 완고한 집념 없이는 표현이 불가능한 아름다움을 품었다는 점이다. 비록 박경윤의 말을 통해 전해 듣지는 못했지만, 그의 작업이 번뇌를 잊게 하는 것이라면 박경윤은 분명 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희망을 갈망한 소년 시절의 모습을 작품으로 치환했을 것이다.
어린 시절 화가를 꿈꿨고, 음악과 문학을 즐기던 소년은 현재 한적한 교외 지역에 본인만의 세계를 구축한 채 수도승처럼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다. “심적으로 불안한 삶을 살았어요. 그러다 아내를 만나 마음의 안정을 얻었죠. 나무 작업에 몰두하게 된 것도 아내의 전폭적인 지지 덕분이에요.” 박경윤에게 안정은 자기 불안과 맞설 수 있는 용기를 가져다주었다.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어요. 한데 제 삶을 돌이켜보면 나무와 끌이 종이와 붓보다 익숙하거든요. 집안 사정 때문에 대학교를 자퇴하고 폴란드에서 3년간 생활했는데요. 당시에는 클래식 기타 제조를 배웠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액자 제작일을 했어요. 그러니까 일단 끌을 활용해 나무 표면을 파내기 시작한 거예요. 어떤 그림이나 형태가 나올지 예상하지도 못했어요. 그냥 시간이 허락하는 한 계속했죠.” 박경윤은 그렇게 자기만의 방법으로 나무 패널에 그림을 그렸다. 나무 패널은 거대한 조각품이 되기도 했고, 쓸모를 갖춘 접시나 테이블이 되기도 했다. 대중은 이를 예술품이라 정의했지만, 박경윤은 여전히 자기 작품을 특정한 언어로 정의하지 않는다.
박경윤은 끌이라는 도구를 사용해 나무에 상처를 가하지만, 맨손으로 작업하기 때문에 작업 당일의 감정에 따라서 나무 표면이 깎이는 넓이와 깊이가 다르다. 그가 사포로 표면을 문질러 만질만질하게 다듬지 않는 것도 자기감정을 고스란히 작품에 남기고 싶은 열망 때문이다. 결국에 나무 표면에 생긴 상처들은 그의 작업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무늬가 됐고, 그의 작품에만 존재하는 오라를 만들어 냈다. 박경윤은 스스로를 작가로 칭하지 않지만, 자기만의 감정을 솔직하게 담은 결과물을 완벽하게 만드는 그의 집요함은 그를 작가로 부를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는 현란한 수식으로 자신의 작품을 포장하기보다, 작품을 정직하게 선보일 수 있는 환경을 고민한다. 그건 작품이 곧 자기의 생이기 때문이다.
갤러리 모순에서 선보이는 전시 <CARVED OUT>은 박경윤의 작품을 온전히 감상할 몇 안 되는 기회이다. 그가 개인전을 안 하기로 유명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제 이름도, 전시 설명도 모두 걷어내고 작품만 갤러리 공간에 전시하고 싶어요. 그런데 갤러리가 그런 걸 원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개인전을 기피했죠. 특정한 일정에 맞춰 작품을 억지로 만들어 내는 것도 싫었고요. 그런데 이상하게 갤러리 모순에서는 하고 싶더라고요. 마음이 편했죠. 관객이 편견 없이 자기만의 관점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갤러리 모순에 놓인 작품은 박경윤 작가의 완고한 집념이 낳은 숭고한 결과물인 동시에 그의 일상을 빼곡하게 담은 일기장이다. “원 없이 쏟아냈으니 이제 제 손을 떠난 것이겠죠.” 이렇듯 <CARVED OUT>은 작품에 담긴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전시가 아니다. 오히려 작품을 통해서 자기만의 의미를 찾는 과정을 보여주는 전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