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ulpted Light>
Chung Sukyung
Words | Seo Jae Woo
Photography | YB Kim

“창을 통해 보이는 나무를 떠올려요.” 유리를 활용해 비정형의 조형물을 만드는 정수경 작가의 한마디는 그의 작업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창밖을 잠시 스치듯이 바라보면 나무가 정적 이미지로 보이지만, 시간을 갖고 찬찬히 들여다보면 나뭇가지와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돼요. 제 작품 또한 일정한 시간을 두고 관찰해야만 보이는 것들이 존재하죠.” 정수경에게 작품을 들여다보는 행위는 중요하다. 그의 작업을 이해하기 위해선 겉모습뿐만 아니라 속 모습도 눈에 담아야 한다. 정수경이 유리로 조형물을 계속해서 만드는 이유도 유리의 투명성 때문이다. “작업의 시작점은 늘 건축물이었던 것 같아요.” 정수경은 모스크바와 런던 유학 시절 기능주의 건축물을 통해 아름다운 이미지를 떠올렸다. 공공건축물과 주택, 성당 등 영감이 되는 건축가의 건축물을 조사하고 방문하며 흥미를 더했다. 물론 그가 건축물을 보러 다닌 건 단순히 외관을 감상하기 위함이 아니다. 건축물의 진가를 알기 위해선 내부 공간까지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수경의 시선이 건축물에서 창으로 옮겨진 것도 그 때문이다. 창은 외부와 내부를 연결할 뿐 아니라 빛을 내부로 끌어들여 공간에 새로움을 더한다. 정수경의 작품은 자기 생각을 켜켜이 쌓은 ‘건축물’이고, 작품의 재료인 유리는 세상과 자신을 잇는 ‘창’인 것이다.
정수경의 유리 작품은 다채로운 색을 띤다.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사용한 건축물 내부에서 쏟아지는 형형색색 빛줄기와 마주한 이후부터 유리에 관심이 생겼어요. 외부에서 스테인드글라스를 바라보면 검은색 유리처럼 어두워 보이는데,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해 쏟아지는 내부에 들어서는 순간, 속절없이 화려한 색깔의 빛이 주는 황홀감에 잠길 수밖에 없어요.” 정수경이 작품을 만들 때 희고 검거나 붉은 불투명에 가까운 색유리를 섞어 사용하는 것도 ‘음양’의 조화로움처럼 반대되는 성질들이 관계할 때 발현하는 아름다움을 보기 위함이다. “색유리를 사용한 일부 작품은 도자기나 철제로 작업한 것처럼 보인다고들 해요. 하지만 그런 작품들도 결국에 유리이기에 들여다보면 내면이 은은하게 드러나죠.” 정수경의 작품은 구름 속을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바라보는 창밖 풍경처럼 구름이 거친 상황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실제로 그의 작품 속에는 고열로 작업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기포, 유리가 엿처럼 늘어났다 굳어진 흔적들이 만들어낸 무늬들이 마치 하나의 독립된 공간처럼 여럿 존재한다. 그 덕분일까. 정수경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으면 빛이 좋은 날 스테인드글라스 창이 설치된 실내 공간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든다.
거푸집에 색유리 블록을 넣고, 가마에 넣어 열로 굽는 주조 기법(casting)을 사용하는 정수경의 작업은 800°C 온도의 가마 성형으로 이뤄진다. 같은 조건을 부여한 작업임에도 서로 다른 형태의 결과물이 나오는 주조 기법 특성 때문에 예측하며 작업함에도 예측 이상의 결과물이 나온다. 정수경은 이를 ‘관계하는 아름다움’이라 정의한다. “가마에 들어갔다 나오면 기대와는 다른 형태가 나오기도 해요. 누군가는 그걸 실패작이라고 부르겠지만 저는 완성작을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가끔 제 작업을 보고 ‘일정치 못한 마감’에 관해 질문하는 분도 있어요. 저는 가마에서 구부정한 형태로 나온 것을 애써 평평하게 만들지 않거든요. 오히려 구부정한 형태를 자연스럽게 다듬죠. 제 작업은 가마라는 환경적 요인과 관계함으로써 생명을 얻는 셈이에요.” 정수경의 작업은 건축물을 닮은 기하학적 형태에서 바람과 파도, 빛 같은 명징한 이미지로는 설명할 수 없는 추상적인 형태로 변했다. 울퉁불퉁한 표면과 매끈한 표면이 혼재된 비정형 작품들은 그가 쓰임과 용도에 집착하기보다 오히려 주변과 관계하는 작품을 선보인다는 방증이다.
건축물의 내외부를 자유롭게 오가는 건 빛뿐이다. 빛이 물성이 되어 공간에 놓인다면 어떤 형태로 존재할까. 정수경의 유리 작품은 마치 빛을 형상화한 결과물처럼 보인다. 창을 통해서 흔들리는 나무를 보는 감정을 느끼고자 한 그가 표현한 형태는 빛처럼 세상과 자유롭게 관계하며 움직이는 찰나이다. “제 작품의 공통된 특징은 결국 투명성인 것 같아요. 빛을 투과하고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이 전부니까요. 하지만 제 작품의 상징적인 형태를 묻는다면,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저는 작품이 공간에서 자연스레 빛처럼 놓이길 바라거든요.” 계절과 시간에 따라 공간에 침투하는 빛의 양이 다른 만큼 정수경의 작품 형태도 공간에 따라 조금씩 변해왔다. “제 작품 중에는 일상에 필요한 기물처럼 보이는 작품도 존재하지만, 저 스스로 작품의 쓰임과 용도를 정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지금 공간에 어울리는 형태를 고안하는 것이 먼저죠. 갤러리 모순에서 전시할 작품은 제가 살던 영국 집에서 착안했어요. 모순에 방문한 날 신기하게도 영국에서 유학하던 시절이 떠오르더라고요. 당시 머문 공간과 닮은 건 하나도 없는데도 공부하던 시절이 떠오르니 신기했죠.” 정수경은 로열 컬리지 오브 아트(이하 RCA)에 수학하며 작업했던 작품을 다시금 떠올리며 유리 작품으로 하나 둘 옮겨냈다.
갤러리 모순은 정수경의 작업을 공간에 놓은 후 <Sculpted Light>로 전시 제목을 지었다. 정수경의 유리 작품이 공간을 새로운 빛으로 물들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정수경은 작품을 통해서 자신의 옛 시절을 돌아보지만 동시에 ‘다름을 인정하는 법’을 상기시킨다. “아름다운 형태는 어떤 형태일까요? 이 질문의 답은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거예요. 결국 미의 기준은 ‘자신’이어야 하니까요. 저는 영국 집의 기물과 RCA 시절 작업을 떠올리며 새로운 작품을 완성했지만, 관람객들은 제 작품을 통해서 자기만의 아름다움과 마주하길 바라요.” 정수경의 작품은 갤러리 모순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의 세기에 따라 다른 얼굴로 보일 것이다. 이는 갤러리 모순이라는 공간이 작품과 관계해 발연한 새로운 장면이다. 정수경은 관객들 또한 자신과 모순이 그러한 것처럼 작품과 관계해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