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bound Harmony>
Cho Youngmi
Words | Seo Jae Woo
Photography | YB Kim
섬유 작가 조영미는 실을 사용해 그림을 그린다. 정확히는 염색된 실뭉치에서 가늘고 긴 실을 손으로 뜯은 다음에 실과 실을 덧붙여 원하는 형태를 시각화한다. 그의 손은 연필처럼 형태를 그리는 일을 하고, 실은 형태에 색을 표현하는 물감이 되는 것이다. 조영미는 실을 다루는 섬유 작가이지만 그가 이번에 완성한 작품은 기하학적인 형태를 닮은 추상미술 작품을 닮았다.
“일기장에 적을 법한 감정적인 이야기라서 특별한 해석을 남기고 싶지는 않아요.” 조영미는 작품을 일일이 설명하기보다 작품에 담아낸 자신의 감정이 자연스레 독자에게 전달되길 바란다. 조영미가 실과 실을 붙여가며 만들어낸 형태는 사각형 밑바탕에 올려진 여러 개의 사각형이다. 면이 채워진 사각형과 그렇지 않은 사각형, 모서리가 둥글거나, 한쪽으로 치우친 사각형처럼 서로 다른 형태의 사각형들이 모여 조형적 아름다움을 선보인다. “사각형을 시각화한 작업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각형에서 벗어나기 위한 작업입니다.” 조영미에게 사각형은 그의 몸에 깊이 스며든 벗어나야 할 이념과 통념이다. “언젠가부터 자신의 한계점을 정하게 되더라고요. 그것이 보이는 실체도 아닌데 말이죠. 저도 모르게 넘어설 수 없는 장벽을 세운 셈이죠. 그 장벽을 뛰어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저는 그런 보이지 않는 장벽을 사각형이라고 생각했어요.” 조영미의 작품 속 사각형이 반듯한 사각형으로 존재하지 않는 이유이다.
조영미에게 섬유는 따뜻함을 상징하는 물성이다. “어린 시절 제 장난감이 반짇고리였어요. 반짇고리에 들어 있는 실을 장난처럼 늘 갖고 다녔어요. 특히나 천을 만질 때 느껴지는 부드러움을 굉장히 좋아했거든요. 친구들이 애착 인형을 만지듯이 저는 천을 만지면서 부모님의 따뜻함을 느꼈던 것 같아요.” 조영미의 추억 속 실과 천은 자연스레 자신을 표현하는 작업 도구가 됐다. 홍익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섬유 공예를 공부했고, 대학 시절에는 최연소 나이로 대한민국 미술대전 공예 부분 대상을 받는 기염을 토했다. 졸업 후에 그는 태피스트리 직조나 염색 작업을 이용한 장식용 직물을 만드는 등 순수 미술을 지향하는 작품 활동에 몰두했지만, 경사(세로줄 실)와 위사(가로줄 실)를 반복해 엮어 직물을 짓는 태피스트리 직조 방법이 오히려 자신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작업이 몸에 배다 보니 스케치부터 완성된 모습까지 머릿속에 그려지더라고요. 저는 그런 게 싫었어요. 완벽한 짜임에서 오는 결과물도 좋지만, 상황에 따라 다양한 감정을 느끼듯이 작업 또한 그랬으면 했거든요.”
조영미는 태피스트리 작업을 한동안 중단하고 공예의 쓰임을 중시하는 스카프를 만들었다. 물론 기존의 방법을 되풀이하지 않았다. 그는 ‘누노 펠트’라는 독특한 기법을 도입해 조각을 닮은 스카프를 만들었다. 누노 펠트 기법은 양모를 실크 위에 올려놓고 비눗물을 뿌린 후 압력을 가해 오랜 시간 손으로 굴리는 것으로, 이 과정에서 실크에 양모가 불규칙하게 축융(섬유가 압축되어 섬유 조직이 서로 엉키는 형태)되어 독특한 질감이나 형태가 생긴다. “누노 펠트 기법은 태피스트리 작업과 달리 우연성이 더해지는 작업이에요. 이렇게 표현하는 게 좀 우습게 들릴 수도 있지만, 스카프의 자유로운 형태와 구성을 시도했어요. 거친 양모와 부드러운 실크가 융화된 스카프는 상품으로도 훌륭했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독특한 조형물로 보였죠. 인사동에서 일반인과 관광객을 대상으로 독특한 스카프를 10년 동안 선보이며 과분한 반응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제 성격이 좀 모난 것이 주문이 또 많이 들어오니까 스카프도 그만 만들고 싶더군요. 그 찰나에 정말로 순수하게 섬유로 감정을 드러내는 작가가 되자고 마음먹었어요. 그렇게 준비한 것이 바로 갤러리 모순에 선보이는 전시 <UNBOUND HARMONY>를 위한 작품이에요.”
회화 작품처럼 벽에 걸린 섬유 작품은 실로만 엮은 작품이기 때문에 미세함 틈 사이로 반대편의 모습이 투영되어 보인다. “제 작업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작품인 동시에 공간까지도 포용해요. 공간과 작품의 경계를 나누기보다 공간과 작품의 조화를 바라는 것이죠.” 조영미가 만들어 낸 섬유 작품을 통해서도 통념에서 벗어나기 위한 그만의 노력이 담겨 있다. “한지 위에 그린 것 같은 느낌을 내고 싶었어요. 밭과 논처럼 저에게 익숙한 풍경도 그리고 싶었고요. 저를 편하게 만드는 안식 같은 공간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싶었죠. 그런데 저는 섬유를 다루는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연필과 붓이 아닌 염색된 실을 사용해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는 거예요. 연필과 붓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스케치 작업도 하지 않아요.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손이 가는 대로 실을 골라서 원하는 형태가 나올 때까지 매만지는 걸 반복하는 것이죠. 유독 빨간색 실로 작업한 게 많은데요. 당시에 부모님이 연달아 돌아가셨어요. 충격과 슬픔 때문인지 작업실에만 가면 계속 빨간색 실만 집는 거예요. 아마도 강렬한 힘을 얻고 싶었나 봐요.”
조영미의 작업은 우리에게 친숙한 실이기에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작업처럼 보이지만, 실마다의 독특한 특성과 고유한 감성을 잘 이해하고 축적된 경험을 통하여 이루어진 작업이라 감히 말할 수 있다. 1981년 대학에서 섬유 공예를 공부한 이후부터, 아니 어린 시절부터 그에게 실은 줄곧 위안을 가져다준 물성이다. 그렇기에 공예적인 기법에서 탈피해 마음을 온전히 실에 담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었다. <UNBOUND HARMONY> 전시는 속박에서 벗어난 작가가 내보일 수 있는 독창적인 시선이 모여 만들어진 조화로움이다. 조영미는 섬유 작가가 갖는 한계에서 벗어나 균열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는 독자성을 띤 작품을 만드는 좋은 기폭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