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INTED OVER

Jeon Hyunwoo / 정현우


Words by Seo Jaewoo / 서재우
Photography by YB Kim



   단아한 형태의 크고 작은 분청사기가 가득한 도예가 정현우의 집과 작업실에서 마주한 건 작업자의 열망이 만들어 낸 독자성이다. 정현우는 금속 공예가인 아내의 고향인 전라북도 부안군에 정착한 이래로 주변의 풍경을 자신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1990년생 젊은 도예가에게 부안군은 동시대 문화를 즐기기엔 턱 없이 부족한 외딴섬 같은 지역일 수 있지만, 정현우는 오히려 그 때문에 자기만이 획득할 수 있는 고유한 색을 찾았다. 어두운 빛깔 도자기의 표면을 칼로 직선을 반복해 새기고, 손가락 끝으로 대범하게 툭툭 문지르듯 밀어내거나 넓고 굵은 붓을 이용해 백토를 바른 자국을 그대로 남기는 방법 등, 그가 도자기 표면에 새긴 거칠고 추상적인 무늬는 주변 환경으로부터 영향받은 이미지들이다. 공간에 놓인 찻잔과 사발, 화병의 무늬들이 공예 장식이 아니라 캔버스에 그려진 수묵화처럼 다가오는 이유이다. 


   “부안군에 자리한 탓에 도재상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는 정제된 흙과 달리 자연에서 채취할 수 있는 흙을 사용할 수 있어요. 흙을 제대로 알기 위해 가마터가 있던 곳의 흙, 집 뒷산의 흙을 캐 직접 수비(원하는 상태의 흙을 제조하는 과정)하고 테스트하죠. 유약도 산에서 발견한 썩은 황토를 구해와서 만들곤 해요. 저는 언제나 자연과 하나된 풍경을 선망하는데요. 그런 관점에서 돌탑을 좋아해요. 인위적으로 쌓은 결과물임에도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신의 존재감을 온전히 드러내기 때문이죠.” 정현우는 돌탑처럼 자신이 빚은 도자기가 일상에 어울리는 동시에 존재감을 드러내는 매혹적인 물성으로 자리하길 바란다.  


   소비자로서 도예가의 공예품을 고를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질문은 “쓰임 너머 도예가만이 담을 수 있는 아름다움이 존재하는가?”이다. 작은 컵을 고르더라도 신중하게 고민하는 건 그 컵만의 매력, 그러니까 도예가가 담아낸 정수를 발견하기 위함이다. “줄곧 도예를 공부했지만, 도예가가 제가 가야 할 길이라는 확신은 없었어요. 그러다 정재효 도예가가 빚은 분청사기 그릇을 마주하게 된 거죠.” 정현우의 말처럼 그가 도예가의 길을 업으로 결정한 순간 또한 ‘정소영의 식기장’에서 정재효 도예가의 분청사기 그릇에 매료된 이후이다.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서 전통 도자를 배우던 시절 그의 취미는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다양한 식기를 보러 서울에 가는 일이었다. 그에게 식기들은 단지 아름다운 형태의 쓸모 있는 물건이 아니다. 도예가의 삶이 묻어나는 물건이다. 식기를 빚기 위해 흙을 혼합하는 방법도, 형태를 매만져 굽는 방법도, 무늬를 내고 다듬는 방법도 모두 도예가의 선택에 따라서 달라지기 때문이다. 결국에 그가 매료된 건 공간에서 아름다운 정물로 존재하는 그릇을 완벽하게 매만진 도예가의 정신과 삶이다. 


   정현우는 여러 차례 정재효 도예가의 제자가 되기 위해 문을 두드렸지만, 아쉽게 타이밍이 맞지 않아 불발되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희망은 끈을 놓지 않고 기다린 끝에 마침내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대학원 시절 실습 바탕의 전문 연구 과정 수업을 통해서 6개월간 정재효 도예가의 요방에서 도제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정현우는 정재효 도예가와 함께한 시절을 인생에서 몇 없는 아름다운 시절로 기억한다. 그가 당시에 배운 건 분청 작업에 필요한 기술이 전부가 아니다. 고전을 현시대의 언어로 바라보는 자세 또한 배웠다. “전통을 동시대에 즐기는 방법을 선생님의 요장에서 경험한 것 같아요. 선생님은 옛 분청과 백자의 작업 방식을 참조하고, 전통 방식인 장작가마를 활용해 도자기를 구워 내는 등 작업의 뿌리는 항상 전통에 두지만, 하나의 매체나 수법, 재료에 작업을 가두지 않고 본인만이 할 수 있는 자율성을 더하는 작업을 선보이거든요. 당시에 선생님과 요장에서 함께 들은 클래식과 왈츠 음악 또한 결코 옛 노래가 아니었어요. 오히려 현재의 기분에 변화를 가져다준 동시대의 음악이었죠.” 


   정현우의 말을 통해서 본 도예가는 전통을 존중하며 취할지 언정 그것을 답습하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만이 낼 수 있는 빛깔과 형태를 통해서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도자기를 다듬는 행동이야 말로 도예가가 갖춰야 하는 덕목이다. 정현우는 숙련된 도예가를 통해서 젊은 도예가로서 필연적으로 갖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전통 방식을 취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매일 아침 9시에 자신의 요방에서 원하는 흙을 얻기 위해 여러가지 원료를 혼합하고, 반죽한 흙을 물레를 사용해 형태를 만들고 장식하는 작업을 반복한다. 단, 정해진 공식을 대입하는 식의 맞춤형 작업을 수행하지 않는다. 오히려 매번 실험해서 새로운 공식을 만드는 데 열을 가한다. 


정현우가 부안군에 정착한 이후 가장 먼저 한 것은 자기 손으로 장작가마를 짓는 일이었다. 장작을 때워 열을 가하는 전통 방식의 가마는 주변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도자기를 굽는 이에게 까다로움을 필요로 하는 장비임에는 분명하지만, 정현우는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할 줄 알아야만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걸 명확히 도자기에 담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가 혼신을 다해 장작가마를 지은 이유도 도자기를 만드는 전 과정을 직접 컨트롤하는 능력을 기르기 위함이다. 이렇듯 정현우의 생활은 ‘도예’라는 울타리 안에 존재한다. 집과 요장, 가마터는 몇 걸음만 걸으면 닿는 곳에 있다. 그가 이제 막 눈을 뜬 도예가임을 부정할 순 없지만, 그의 삶에 ‘도예’가 자리하는 한 그 또한 숙련된 도예가로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할 것이다. 


   갤러리 모순의 전시 <PAINTED OVER>는 정현우가 서울에서 선보이는 첫 번째 개인전이다. 그가 앞으로 쌓을 돌탑의 첫 번째 돌멩이인 셈이다. 확언할 순 없지만 정현우의 시간은 그가 빚은 도자기의 무늬처럼 계속해서 덧칠해져 자기만의 빛깔을 품을 것이다. 미완의 도예가가 뿜어내는 매력은 열망으로 가득한 에너지가 만들어낸 ‘불안의 미학’에서 비롯한다. 불안의 미학은 자신의 것을 처음 공개하는 이들의 참신한 작품이 만들어 낸 낯섦이다. 그리고 이 참신성은 갤러리 모순이 1주년 전시로 정현우의 공예품을 의심 없이 선택한 이유이다. 갤러리 모순은 그 누구보다 불안의 미학이 갖는 힘을 이해하는 공예 갤러리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정현우의 집념과 열망이 한 폭의 수묵화처럼 펼쳐지는 전시 공간은 그가 얼마나 집요하게 자신의 것을 옹골차게 만들었는지를 살펴보는 자리이다. 여기에 당신을 매혹할 도예가 정현우의 식기와 화병이 놓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