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itched Together>
Moon Soon Won
Words | Seo Jae Woo
Photography | YB Kim
정물화와 시의 공통점은 익숙한 사물과 단어를 감상함에도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런데도 우리가 정물화와 시를 찾아서 감상하는 건 작가의 의도를 알아차리기도 전에 아름다운 찰나를 발견할 수 있는 창작물이기 때문이다. 손으로 한 땀 한 땀 베지터블 가죽에 실을 꿰어 자신만의 이야기를 형상화하는 작가 문순원은 자기 작품을 “쓸데없이 어렵고 정성스러운 마음을 다하여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고 설명하지만, 만들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이 작품에 드러나는 것을 경계한다. 그 결과 문순원의 작품은 이해와 해석을 요구하기에 앞서 아름다운 정서를 즉각적으로 전달하는 정물로서 공간에 놓인다.
문순원은 가죽을 실로 꿰어 형태를 매만졌음에도, 그의 작품은 가죽에서 쉽게 느껴지지 않는 빛깔을 품는다. 작품을 먼발치 떨어져 감상하면 흙으로 빚은 도자기 같고, 작품의 거리를 최대한 좁히면 나무를 깎아 만든 조형물처럼 보인다. 여기엔 작가의 의도가 다분하다. 문순원은 가죽 표면을 닳게 하려고 사포를 반복해 문지르거나 날카로운 공구로 생채기를 내고, 염색해 색을 바꾸는 등 가죽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성질이 자기 생각을 침범하지 못하게 가로막는다. 그를 가죽공예 작가로 단언할 수 없는 이유이다.
“가죽을 진지하게 다룬 건 어림잡아 13년 정도 된 것 같아요. 원래는 금속을 다루는 걸 좋아했습니다. 금속은 제가 원하는 형태와 색깔을 내는 데 가장 효율적인 물성이거든요. 다루기는 까다롭지만, 잘만 다루면 작가가 원하는 형태로 구현하기 가장 쉬운 재료이니까요. 그러던 중 자연적인 형태와 질감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손으로 직접 매만질 수 있는 흙이나 가죽에 관심이 갔죠. 때때로 제 도자기 작업을 금속 작업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있더군요. 아마도 제가 흙이 아닌 금속을 먼저 접했기 때문일 거예요. 가령 저는 금속을 수작업으로 다듬질할 때 쓰는 줄을 사용해 흙의 표면을 갈았는데, 이는 금속을 다루었기에 가능한 시도이죠.” 문순원의 말에는 그가 가죽을 다루는 과정에 금속과 흙을 다루던 방식을 활용한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그리고 이는 문순원이 작가로서 독자성을 다지는 비결이다.
문순원이 작품을 통해서 말하는 것은 관계성의 회복이다. 가족과 친구들, 삶에서 마주한 다양한 주변인과의 관계에서 매번 어려움을 겪었던 작가는 자신의 주변부에 있는 사물을 아름답게 재현해 상대와의 거리감을 좁히는 데 심혈을 쏟는다. 그가 주방이나 일상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채소나 과일, 화병과 접시 같은 정물을 형상화한 작품을 만드는 건, 모든 인류가 가진 보편적인 감정을 담기에 가장 쉬운 형태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민화인 ‘책가도(冊架圖)’에 등장하는 정물들은 모두 개인의 욕망이고, 소원이고, 바람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제가 보고 느낀 걸 표현하기 위해 주변에 가까이 있는 것에 제 마음을 담았습니다.” 문순원의 정물은 묘한 끌림을 준다. 익히 아는 존재임에도 모르는 존재처럼 공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는 관객이 자기가 구현한 정물에 끌림을 당하는 순간에 비로소 관계성을 회복한다고 믿는다. 호기심은 곧 새로운 질문을 낳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순원이 관객에게 기대하는 질문은 무엇일까? 그는 그저 자신과 같은 주파수로 작업을 바라보면 족하다고 말한다. 만약 당신이 주방 한쪽에 놓인 접시에 올려진 무화과를 보고 아름답다는 감정을 느낀다면, 그와 같은 주파수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문순원은 매번 자신의 유년 시절의 기억을 떠올린다. 여러 장면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간다. 몇몇 장면은 편안함을 안겨주지만, 몇몇 장면은 의심과 불안한 감정을 심어준다. 문순원은 장면과 장면 사이에 잃어버리거나 각색된 기억을 아름다운 정물로 표현한다. 형태만으로도 모든 순간을 아름답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만든 정물에는 저마다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지만, 그는 각각의 의미를 일일이 해석하길 거부한다. 정확히는 새로운 관계를 통해서 의미를 함께 발견하길 기대한다. 문순원에게 물성은 단어이고, 제작 방법은 문장이며, 작품은 목소리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계속해서 자기에게 잘 맞는 물성(단어)을 활용해 자기만의 방법(문장)으로 독자적인 작품(목소리)을 만들어 관객과 관계(대화)하고 있으니 말이다.
순백의 비워진 작업실. 문순원이 갤러리 모순에서 개인전을 하기로 결심한 후 떠올린 전시 이미지는 실재하는 작업실과는 정반대의 풍경이다. 그에 말에 따르면 작업실은 작업에 필요한 명목으로, 혹은 새로운 제품을 사용하고 싶은 호기심으로 사드린 많은 공구와 재료들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에 놓여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어수선하다. 어쩌면 순백의 비워진 작업실은 자기만의 세상에 갇히길 거부하는 작가의 간절함이 만들어 낸 환상일지도 모르겠다. “어떨 땐 너무 많은 서사 때문에 편안한 마음을 잃어버릴 수 있어요. 이번 전시를 통해서 기대하는 건, 제가 볼 수 없는 찰나를 발견해 주는 누군가와 마주하는 순간입니다.” 문순원의 말에는 전시 타이틀을 <Stitched Together>로 정한 이유와 전시의 이미지가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 마치 정물화와 시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