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ural Forms>
Park Jiwon
Words | Seo Jae Woo
Photography | YB Kim
박지원이 흙으로 빚어낸 조각은 자연스레 뻗는 줄기처럼 보인다. 공간을 점유한 조각들은 정지된 상태로 존재하지만, 언제라도 꿈틀대며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만 같다. 조각이 꼭 움직이는 사물을 촬영한 결과물처럼 보이는 이유이다. 박지원은 사회적 통념 같은 특정 메시지를 작품에 담는 작가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작업하는 동안 할 수 있는 최선의 아름다운 형태를 다지는 작가에 가깝다.
박지원은 흙덩어리를 평평하고 유연하게 만든다. 단단한 흙덩어리를 힘껏 작업 테이블에 내려치거나 밀대로 밀어 평평하고 부드럽게 만드는데 이는 종이접기 하듯이 흙을 자유롭게 구부리거나 펴기 위함이다. “평평한 흙을 제 의지로 접거나 구부려 세워서 입체적인 기둥을 만듭니다.” 박지원의 말처럼 그의 모든 작업은 기둥에서부터 시작한다. 흥미로운 건 어떤 기둥도 같은 형태가 없다는 점이다. “나무를 떠올렸습니다.” 박지원은 나무를 통해서 작업의 방향성을 그린다. 나무는 모든 생명체와 인연을 맺고 공생하며 굳건하게 환경에 적응한다. 비록 비스듬하거나 굴곡지고 균열이 생길지라도 자신만의 해법을 찾아 바로잡고 주변과 균형을 이룬다. 박지원에게 나무의 팽창은 무언가를 만들기 위한 열망의 몸짓이자, 희망의 찰나인 셈이다.
“공대를 졸업하고 화학 기업에서 2년간 근무했습니다. 안정된 생활이었지만 어느 시점부터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되묻고 싶었어요.” 박지원은 갈등과 충돌하며 수면 깊숙이 잠들어 있는 내면의 자신을 찾고 싶다고 말한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심한 후 대학원에 입학해 미술을 공부한 이유도 그 때문이죠. 당시에 손으로 표현하는 것이 적성에 맞았어요. 제 모든 작업은 흙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제 의지대로 매만질 수 있다는 점과 건조와 소성하는 과정에서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 개입한다는 점이 흙의 매력으로 다가왔죠.” 박지원은 흙의 양가적인 성질에 자신의 상황을 대입한다. 흙을 바로 세우는 과정을 반복하며 만들어 낸 조각들은 현 상황 속에서 더 나은 미래를 그리기 위한 한 개인의 노력인 동시에 자기만의 세계를 공고히 하는 작가의 헌신이다.
박지원의 조각들은 작가의 성장통에 가깝다. 형태와 쓰임이 다름에도 하나로 연결된 줄기처럼 보이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줄기들이 과연 온전한 작품이 될 수 있을까? 만약 줄기가 과정으로 남는다면 작품이 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박지원이 만든 줄기는 결과로 공간을 점유한다. “과거의 저와 현재의 저는 분명 다르겠지만, 과거의 제가 불완전했다는 말은 아닙니다. 당시에 저는 그 시간 속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삶을 선택하며 살았으니까요.” 박지원의 줄기들은 스툴이, 화병이, 벽에 걸린 조형물이 되거나 탑처럼 솟은 기둥이 된다. 그렇게 독립된 존재로 공간에 놓인 줄기들은 시의 은유적 표현처럼 각자의 존재감을 내보인다.
“한번은 현대 무용을 배운 적이 있어요. 수업 중에 파트너와 신체를 맞대어 움직이는 즉흥 춤을 춘 적이 있는데요. 파트너와 몸이 붙어 있음에도 자유롭게 움직이고,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몸짓을 창조하는 느낌이 들더군요. 마치 나무처럼. 저는 제 조각도 그런 모습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끊어진 조각 파편의 결합이기보다는 계속해서 면과 면으로 연결된 상태이길 바랐죠.”
박지원이 빚은 형태는 온전히 박지원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어떤 목적이나 대략적인 형태를 머릿속으로 구상해 흙 판을 입체적으로 매만지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순간에 흙이 찢어지기도 하고, 지탱하기 위해 다른 면을 덧붙이기도 한다. 때론 버티기 위해서 원하지 않은 형태로 매만져야 할 때도 있고, 기둥이 중력을 견디지 못해 쓰러지는 경우도 다반사다. 하지만 박지원은 그 찰나에 좌절하기보다 더 나은 해법을 찾는다. 머리나 관념이 아니라 두 팔과 손을 이용해 흙을 다시금 부여잡고 계속해서 새로운 형태를 고안해 나간다. “흙을 다지는 행동을 반복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해방감을 얻게 됩니다. 지속적으로 재료를 다루면서 어떻게 제가 자유로워지는지를 찾는 것이죠. 비로소 현대무용이나 나무를 통해 경험한 아름다운 찰나를 포착하게 되는 거예요.” 박지원이 찾는 아름다움은 결국, 자신으로부터 시작된 줄기가 연결한 살아 숨 쉬는 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