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WN AWAY

Jun.GK


Words by Seo Jaewoo / 서재우
Photography by Song Siyoung | 송시영



   벽면에 걸린 유리 조형물들이 갤러리 공간을 점유한다. 입체적인 볼륨감을 갖춘 유리 조형물들은 우리가 익숙히 아는 형태를 모사하거나, 단어나 무늬를 포함하고 있다. 명확한 의미로 비치진 않지만, 작가의 생각이 담긴 조형 언어처럼 보인다. 실제로 작가 임현준(이하 Jun.GK)은 모든 유리 조형물에 자신의 메시지를 심는데 몰두한다. 그의 작업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가 어떤 소재를 다루는가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왜 이런 형태를 고안했는가에 집중해야만 한다. 


   Jun.GK는 줄곧 유리를 사용해 조형물을 창작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업에서 유리라는 물성을 배제하는 건 불가항력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Jun.GK는 자신에게 유리는 그저 각인된 물성일 뿐이라고 얘기한다. 그가 처음 미술을 공부했을 때 선택할 수 있는 물성은 흙과 유리였고, Jun.GK는 두 물성 중에서 작가로서 자기만의 발자취를 남길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유리를 선택한 것뿐이다. 스스로가 유리 작가 혹은 유리 공예 작가로 불리는 것을 기피하는 이유이다.  


   Jun.GK의 작업은 특정한 사건을 자신의 조형물에 가두는 것에 가깝다. 이는 사회적 통념이나 현상일 수도, 철학적 질문일 수도 있다. “뉴스를 보거나, 인문학 서적을 읽거나, 개념 미술가들의 작품을 공부하다가 문뜩 떠오르는 질문이 생기곤 합니다. 저는 그런 궁금증을 말이나 글로 풀어내는 사람이기보다, 시각적인 형태로 만드는 데 정성을 쏟는 사람이에요.” 그의 작품이 입체적인 형태로 공간을 점유하는 이유이다. “세상 이야기는 언제나 공간을 점유하거나, 공간에서 관계하면서 발단합니다. 제 작업은 바로 그런 순간에 발생하는, 발생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문제와 갈등, 이념과 현상을 저만의 방법론으로 표현한 기록입니다.”  


   Jun.GK에게 평면은 과거이다. 점이 이어져 선이 되고 선과 선이 만나 면이 되고 면이 모여 입체, 즉 공간을 만든다. 유리에 공기를 불어 넣는 ‘에어 브로잉 air blowing’ 기법을 통해서 유리에 공간성을 더하는 그의 작업 특성상 평면은 과거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다만 그의 작업에서 평면은 오래된 잊힌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미래로 향하는 손짓이자 세상과 관계하기 위한 몸부림에 가깝다. 즉 그의 작업은 계속해서 앞으로 뻗어 나가는 생명력을 부여받은 또 다른 자아인 셈이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공간을 침투하는 유리창 작업은 작가의 적극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작가는 창을 투과하는 빛을 통해서 관객에게 작품의 의도를 전달할 수 있지만, 직접적인 소통을 위해 창 스스로가 공간을 점유하도록 작업을 설치했다. 이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정확히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 표명이기도 하다. 이렇듯 Jun.GK는 자신이 경험한 과거의 일(평면)을 공간(조형물)에 담는 작업을 진행한다. 그리고 관객이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적극적으로 갤러리 공간을 점유하길 기대한다. 


   “벽에 걸린 제 작품을 아름다운 조형물로 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는 단 한 번도 아름다운 형태로 작품을 만든 적이 없습니다. 제 작업을 온전히 이해하는 건 물론 쉽지 않을 거예요. 가령 벽에 걸린 달항아리 작업은 새로운 출발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상하게 뒤늦게 새로운 걸 시도하는 사람을 응원하기보다 질책하기 바쁘죠. 그래서 달항아리에 검은색 줄무늬 세 줄을 그려 넣었어요. 이 줄무늬가 의미하는 건 계속해서 시도해도 된다는 의미이고, 달항아리가 의미하는 건 소망이나 바람이에요. 왜 달을 보면 소원을 빌곤 하잖아요.” Jun.GK의 말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그의 작업에서 중요한 건 형태를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닌 형태 안에 숨겨둔 의도를 파악하는 행위이다. 


   <BLOWN AWAY>에 소개되는 작품들 대부분은 아름답다. 작가 자신은 그 아름다움을 철저하게 거부하겠지만, 아름다움을 정의하는 건 분명 사람마다 다를 테다. 하지만 이 작품들을 단순히 아름답다고만 치부할 수 없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반드시 공간에서 직접 보고, 성찰해야만 한다. 해석의 자유로움이 필요한 작품도 세상에 많지만, Jun.GK의 작업은 정확한 해석이 필요한, 우리가 겪고 있는 세상 속 이야기이다. 그는 1900년대 미술의 새로운 혁신을 더한 개념 미술가들이 자기만의 세계를 추상적인 물성에 빗대어 표현한 것처럼, 유리라는 속성에 자기 생각을 숨겨 두었다. 그리고 관객에게 말한다. 함께 적극적으로 대화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