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RE FLOWER 

Park Honggu / 박홍구


Words by Seo Jaewoo / 서재우
Photography by YB Kim



   의자 다리가 유독 길다. 자세히 보니 다리가 세 개다. 등받이는 또 어쩜 이리 작을까. 같은 공간에 놓인 뾰족한 나무 기둥의 용도는 무엇일까. 단순한 오브제라기엔 담대하게 솟았다. 그을린 문양이 주는 강렬한 힘 때문에 누군가는 이를 활화산이라 말하겠지. 그릇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모두 동그란 형태를 띠지만, 뻗어나가는 동그라미처럼 보인다. 정적인 사물을 통해서 움직임을 봤다면 거기엔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목공예 작가 박홍구의 작업실에서 마주한 가구와 그릇 등 일상의 집기는 모두 맺음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뿐이다. 


   박홍구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의 작업 배경을 추적해야만 한다. 그는 전통 가구를 만들던 공장에서 일하는 가구장이 중 한 명이었다. 동일한 형태의 가구를 반복적으로 만드는 일은 나무의 성질을 이해하는 좋은 밑거름이 됐지만, 이상적인 삶을 좇는 데는 걸림돌로 작용했다. 그가 평탄한 삶을 등지고 경기도 이천 외딴 시골 동네에 정착한 이유도 반복된 삶 속에선 변화의 바람이 불지 않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아내에게 더 나은 행복을, 아들에게 높은 미감(美感)을 알려줄 희망의 불씨가 필요했다. “한마디로 말하면 생존 방식입니다. 저는 정규 미술 과정을 받은 엘리트도, 제도권 미술에 속한 사람도 아니죠. 그러니 제가 할 수 있는 표현 방법을 만들어야만 해요. 그래야 쓰러지지 않고 생존하죠. 반드시 아내와 아들에게 줄 희망의 메시지도 필요합니다. 그게 없으면 우리 가족은 모두 절망할 거예요. 제게 희망의 불씨는 바로 나무입니다.” 


   박홍구는 20년 전 가족과 이천에 정착한 이래로 단 한 번도 멈춤 없이 자신만의 언어로 된 목공예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그의 입을 빌려 작품을 소개하면, “작업자의 감성과 에너지를 담아낸 결과물”이다. 주변을 둘러봐도 보이는 건 족히 10년은 숙성된 거대한 목재 더미와 낮은 산이 전부인 동네에서 작가인 그가 어떤 영감을 받을까 싶다만, 그는 오히려 변화가 잦은 외부 환경에서도 굳건히 버텨온 나무와 쌓인 목재 더미를 통해서 매일 작업할 이유를 발견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계절과 날씨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동시에 자기중심을 잃지 않는 나무의 성질은 단기간 학습해 얻을 수 있는 지식의 영역이 아니다. 오랜 시간 지켜보고 어루만지며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감각의 영역이다.

    

   박홍구가 작품을 만들 때 스케치하거나 도면을 그리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저 감각으로 나무를 깎아 즉흥적으로 형태를 만들어간다. 목재에 열을 가해 문양을 만드는 추상탄화 작업도, 자연으로부터 온 돌 조각으로 목재에 문양을 만드는 석편화 작업도 동일하다. 그에게 불과 돌은 아름다운 문양을 만드는 도구가 아니라 작업자의 감성을 목재에 이식하는 도구이다. “이건 불안이고, 저건 평온이죠.” 작품의 용도가 아닌 만드는 순간의 마음을 먼저 얘기하는 작가의 그릇은 벽에 걸어야 할 것 같고, 의자는 다가가 말을 걸어야만 할 것 같다. 오브제는 아픔을 덜어낸 작업자의 마음 같다. 이는 비단 외부인만의 감상이 아니다. 박홍구 자신의 감상이기도 하다. 


   전통의 아름다움을 동시대 문법으로 전달하는 갤러리 ‘모순 서울’에서 전개하는 전시 박홍구 개인전 <Fire Flower(불꽃)> 또한 공예품에 투영한 작가의 작업 세계에 집중한다. 목재에 열과 돌을 가해 형태를 만든 박홍구의 작품은 완성된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의 작품은 작업을 갈망하는 작업자의 희생과 감내가 만들어 낸 열매이다. 열매가 품고 있는 건 작업자의 열망이다. 이 열망이 폭발음을 내고 터지는 순간, 우리는 박홍구의 불꽃과 마주할 것이다. “오래전부터 다음 버전을 준비해요. 제 임무가 준비하는 것이거든요.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시점에 보따리를 풀어내는 것이죠.” 박홍구의 말처럼 그의 작품은 과거를 품고 지속해서 새로운 불꽃을 피우기 위해 예열 중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그가 피워낸 불꽃은 자신으로부터 출발해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이다.